2012년 11월 9일 금요일

MB 없는 선거에 대하여

그냥 빠르게 몇 가지만 적어보자.

1) 한겨레가 "MB실종"이란 중요한 사실을 지적했다. 그런데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 전달하는데는 실패했다. 야지놓느라 바빠서 말이다.
2) 나는 "MB없는선거"야 말로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이라 생각한다. 나아가 그것은 이번 대선이 훗날 학문적으로 참조될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될 것 같다. ('철수있는선거' 보다 더 말이다.)
3) "MB없는선거"의 핵심은, 그러나 한겨레 기사처럼 레임덕 대통령의 정치적 존재감 상실에 있지않다. 늘 그랬다. 그래서 "MB는 왜 저리도 무기력(무능)한가"는 빗나간 질문이다.


4) 오히려 기사 말미 표현처럼, MB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행복한 임기말"을 보내고 있다. 집권여당으로부터 탈당요구도, 날서고 참담한 정치적, 정책적 폄훼도 없다. MB는 이미 "민주화이후 처음으로 집권 후 '대통령 당'을 만들지 않았다"는 기록을 가졌다. 여기에 더해, MB는 민주화이후 처음으로 집권당 당적을 보유한 채 임기를 마치는 대통령이 될 것같다. 그것도 아마도 정권재창출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말이다.

5) 한국정치를 잘 모르는, 외국 연구자가 만약 이 사실만을 접한다면, 그는 MB를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 가운데서 임기 말 가장 사랑받은 대통령으로, 또 가장 한국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발전에 가장 기여한 지도자로 볼 것이다. 뭐 한국의 룰라 쯤으로 여기지 않을까?

6)그러나 우리는 MB가 그만한 대접과 평가를 받을 인물이 아니란 걸 안다. 왜 이렇게 됐나? 누가 "MB없는선거"를 만들었고, 그래서 누가 MB에게 어울리지 않는 안락한 임기말과 역사적 평가를 안겨주었나? 바로 제1야당 민주당이다. 그리고 그 지도연합이다.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오류이다.

7) 현직정부에 대한 "회고적 심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권을 되찾고자 하는 야당의 가장 쉬운 전략이자 효율적 무기다. 지난 대선에서 MB의 압도적 승리는, 민주당 일각에서 말하듯이, 그에 대한 한국 유권자들의 "전망적 평가"가 압도적으로 좋아서가 아니다. 노무현-열리우리당 정부가 너무나 형편없었고 싫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 있어 유권자의 판단은 확고하고 단호했다. 그래서 지난 대선결과는 12월 본선이 아니라, 일찌감치 이명박-박근혜 사이의 한나라당 경선에서 확정된 것이었다.

8) 과거 노무현 정부에 대한 한국 유권자들의 평결처럼, "형편 없는 정당(리더)을 권력에서 끌어내리자"만큼 강력한 슬로건은 없다. "현 정부의 형편없음"은 그 때쯤이면 유권자들 누구나 뼈저리게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끌어 내린 자리를 채우게 되는 자신들이 얼마나 괜찮은지를 굳이 증명할 필요도 없다. 단지 정권(공직)을 맡겨도 좋을 최소한의 경험(공직경험)과 조직적 체계(정당)를 갖추고 있기만 하면 된다.

9) 민주파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MB정부가 그렇게 형편 없었다면, 야당 민주당의 최고의 전략은 그냥 고장난 전축처럼 이 점만을 끝 없이 강조하고, 그들이 내세운 새로운 후보(박근혜)나 조직적 변모(새누리당)가 얼마나 허구인지, 즉 MB정부와 얼마나 닮았는지를 강조해야 한다. 그것만 하면 된다.

10) 그런데 민주당은 자신들 스스로, 이번 대선을 MB(회고적 심판)가 아닌 박근혜에 관한 것(전망적 판단)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박근혜와 MB가 얼마나 닮았는지를 폭로하기 보다는, 난데없이 박근혜와 그녀 아버지가 얼마나 닮았는지 폭로하는데 집중했다. 그 대응과정에서 박근혜 캠프의 오류와 오기도 만만찮았지만, 그들로서는 나쁘지 않는 장사였다. 왜냐면 선거가 어떻게 손 쓸수 도 없는 MB심판의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의 결단과 의지로 뭔가 해볼 수 있는 선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11) 후보전술에서도 실패했다. 사실 야당은 여당과 정부의 실정 비판에만 충실하면 된다. 자신들이 집권했으면 달랐을꺼라고 큰 소리만 치면된다.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는 굳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다. 그럴 수도 없다. 단 유권자에 제출할 대안이 상식적 수준에서 최소한의 경험과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여기서도 엉뚱한 선택을 했다. 유권자들이 평가 할 최소한의 판단의 근거를 갖지 않은 후보를 내놓은 점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알수 없는 후보라는 말이다. 더욱이 그와 그의 팀들이 여전히 유권자들의 기억에서 역사적, 정치적 평가를 받고 있는 바로 직전 정부의 핵심인사들이란 점에서, "현정부 심판 대 전정부 심판"이란 구도를 자초했다.

12) 그러니 남은 것은 또 '단일화'라는 산수다. 캠페인은 단일화로 대체되고, 단일화 했으니 평가해줄꺼라 한다. 그러나 단일화라는 예선의 실현가능성과 본선에서의 효용을 떠나, 유권자는 다음을 묻게 된다. 단일화가 평가될 과제라면, 늘 미리 단일화 해 있는 저쪽(새누리당)이 아니라, 거의 마지막 순간에, 그것도 비정상적이고 위태로운 수준에서 통과하는 이쪽을 더 평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3) (너무 길어져서 급히 줄임) 그래서 "MB없는선거"는 현재 민주당의 오류와 실패의 직접적 결과물이다. 가장 쉽게 청와대에 들어간 MB는, 이제 가장 편히 나오고 있다. 누구 덕분인걸까? 또 국민들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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