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9일 화요일

왜 정당 없는 선거는 시민의 이익에 복무하지 못하나?

안철수 후보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는 방안  으로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폐지를 언급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페북에 다음과 같이 썼다.
"잘 알지 못할 때, 또는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확신이 없을때 (정치리더에겐 의외로 자주 있는 일인데) 말하지 않는 것도 덕목이자 능력이다."
그러나 후배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제가 정치쪽은 잘몰라서요... 시군구의회 정당 공천을 폐지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건가요?
아래는 여기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참고로 오늘 10월 9일 에피소드를 계기로, 그것이 원인은 아니겠지만, 18대 대선은 사실상 결정된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면 마지막 남은 변수가 사라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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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할지 몰라 꽤나 망설였네

아마도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야 할것 같네. 민주주의는 간단히 말하면 하나의 통치/지배의 체제이지. 왕정이나 귀족정이 그런것처럼 말이지. 그럼 그것들과 뭐가 다르냐? 지배자들이 지배받는 이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데 있지. 대개 선거라 말하는 장치 내지 절차를 통해, 정기적으로 내려지는 시민들의 집단적 평결에 의해서만, 지배자 즉 정치엘리트(와 그 무리)는 통치할 자격과 권한을 부여받고, 혹은 박탈당하게 되지. 한마디로 말해 우리를 통치할(표현이 거슬린다면 우리를 대신해 공적 결정을 내릴) 엘리트를 교체할 수 있는 체제로 간명하게 정의 될수 있지.

그게 뭐 대단하냐고? 인류역사이래 수천년을, 물론 아주 짧은 시간 아주 제한된 공간에서 예외적 체제가 존재했지만, 피치자의 동의나 허락이 아니라, 신의 뜻, 핏줄, 적나라한 물리력에 근거한 자의적 지배 하에서 살아오다, 가장 앞선 곳을 기준으로 볼때 불과 2백년 좀 넘게, 권좌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마저 맘에 안들면 적어도 이론적으론 쫓아낼 수 있는 통치/지배의 체제를 갖게 되었고, 나름 개선해가며 살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대단하지 않다고 하면… 뭐… 할말이 많지 않은거지.

아무튼 현대민주주의는 그래서 대표의 체제, 즉 대의제를 기본양식으로 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 대의제를 실천하면서 만나게 된 여러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사실 자연스레 발견된) 것이 바로 정당이야. 그렇다면 대의제가 작동하는데 무슨 문제가 나오는 걸까?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어. 첫째 좋은 사람을 대표로 만드는 거. 둘째, (사회가 크니 대표도 여러명이니) 대표들이 집단적으로 좋은 결정을 만들고 집행하도록 하는 거. 셋째, 대표가 선거 때만이 아니라 선거 이후에도, 계속 좋은 대표로 머물게 하는 거. 그렇다면 대의제에 내장된 이런 문제들을 정당은 어떻게 해결할 수, 아니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걸까?

첫번째 문제와 관련해 보자면, 정당은 만약 정당이 없으면 거의 무한대로 올라갈 유권자의 대표선정과 관련한 정보탐색 비용을 크게 줄여주지. 원래 공직이란게 어느 시대 사회나, 자리 수보다 하고 싶은 사람 수가 많잖아? 그 중에서 옥석을 어떻게 가리느냐. 유권자들이 출마한 사람 하나 하나를 다 알아보고 평가할려면 한도 끝도 없지. 그리고 우리가 대통령만 뽑는게 아니잖아. 국회의원. 지방의원. 교육감 등등. 그걸 정당이 하도록 하는 거지. 정당은 선거에 이기기를 원하고 그렇다면 좋은 사람에게 공천을 줘야할 유인이 있잖아? 부패하고 사기치는 사람을 공천 주면 결국 정당의 명성을 떨어뜨리고 이는 그 정당 소속 다른 정치인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되지. 그래서 어쩌면 유권자의 역할이라 할수 도 있는, 좋은 사람을 뽑고 관리하는 역할을, 우리는 정당에 위임하는 있는 것이지.

두번째 문제도 중요해. 만약 정당이 없어 국회의원 299명이 모두 무소속이다 생각해 보자구. 그러면 아마 아주 사소한 정책도 결정되기 어려울 꺼야. 복지정책도 299개까진 아니더라도 수십 개의 법안이 나오는것이 일반적이겠지. 그러면 그걸 다 투표한다고 생각해봐. 입법도 정책도 사실상 불가능 해지지. 정당만이 다원주의적 민주사회에서 집합적 선택을 가능케 할 수 있지.

마지막은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데, 정당은 정치인이 선거 이후에도 책임지게 만들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치가 되지. 루쏘의 유명한 말, 유권자들은 투표할때만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다는 말은, 정당의 관념을 갖지 않아서 나온 말이지. 왜냐면 유권자들은 정당을 통해 집단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거든. 소속 의원들 몇 명이 문제를 일으키면, 해당 정당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그래서 해당정당 소속 의원들이 다음 선거에서 공동으로 피해를 보게 되지. 일종의 연대보증제도라고 할까. 이를 집단적 책임성이라 하는데 정당이 이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메커니즘이지.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우리가 요즘 자주 보게 되는 것이 소속 의원이 뭔가 사고를 치면, 정당이 여론보다 더 앞서, 더 강하게 처벌을 하는 예들이지. 집단적 책임성이 작동하는 것이지.
자. 이 정도 이야기를 했으니. 기초단체장 공천문제도 이야기할 수 있겠네. 기초단체장의 자질과 도덕성이 자주 도마에 오르고, 그 해법으로 정당 무-공천이 자주 말해지는데 나는 이런 접근이 사태를 더 나쁘게 만들것이라 생각해.

왜냐면, 정당이 관여하지 않으면, 즉 공천을 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우리는 후보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를 갖지 못하거나 큰 어려움을 겪게 되지. 그럼 투표를 하지 않거나, 애써 하기 위해서는 몇 장 짜리 선거홍보물만 보고 뚫어져라 봐야 되는 거지. 일반적으로 투표율이 낮고, 후보자게 관한 정보가 지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선거에 유리한 후보는 지역에서 이미 꽤 알려지거나, 지역을 오랫동안 누빈 사람들, 이른바 지역유지로 불리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지.

지방 의회의 결정도 마찬가지지. 중앙당에서 부터 내려오는 정책과 입법의 방향 내지 기준이 없다면, 자유로운 십수명의 지방의원들이 무엇을 논의하고 결정할까? 자기 개인사업의 이해관계나 또는 동네 현안이겠지. 처음에는 자신들 것을 먼저 하겠다 악다구니 하다가, 나중에는 이번에 우리동네 다음엔 당신 동네 이런 식으로 질서 즉 짬짜미를 하게되겠지. 이런 상황에서 예컨대 무상급식과 같은 보편적 이슈는 논의되기 어렵고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크지.

세번째 책임성 문제도 마찬가지지. 지방의원 누구누구가 어떤어떤 잘못을 했다라구 기껏 지역언론에서 떠들어봐야, 사람들에 잘 알려지지도 않고, 또 그 역시 금방 잊혀지지. 그건 유권자들의 탓이 아니지. 정당을 통해 공동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제를 갖지 못한다면, 자신의 임기동안 작정하고 자신의 개인적 이해만 쫓는 정치인에 대해서도, 유권자는 다음 선거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지. 그래서 정당이 없다면, 정당의 건강한 역할이 없다면, 유권자들은 더욱 더 무력해지지.

하는일이 너무 소소해서, 선거를 아예 안 치르면 모를까. 예를들어 기초단체장은 예전처럼 임명직으로 전환한다던지, 아니면 의회의 경우 배심원 방식으로 주민들의 무작위 선발해 공무에 관해 보고받고 의견을 개진하는 통로 정도로 바꾸는게 아니라면, 선거를 치르면서 정당의 관여를 막는 것은 가장 나쁜 정치, 가장 나쁜 대표를 만드는 첩경이라고 생각해.

오늘날 지방 의원들의 무능과 부패 등의 문제들은 정당공천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기 보다는, 영남과 호남 등 정당 간 경쟁이 없는 일당지배 지역에서 지역정치의 부정적 영향이 과도해 발생한 문제들인 경우가 많지. 아니면 아예 유권자들이 지역정치 자체에 너무 무관심해서 생긴 문제인 경우가 많고. 이런 상황에서 정당의 철수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훨씬 더 나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참고로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현재 정당이 관여하지 않는 교육감 선거도 당연히 정당공천을 해야 한다고 보는거지. 교육정책 처럼 중요한 것을 단지 교육자 경험이 있는 전직교사/교수 혹은 관료들의 경쟁에 맡긴다. 공식선거비용이 서울을 기준으로 30억이 넘는 선거를 개인들끼리 알아서 조직해라? 곽 교육감의 불행한 사태는 정당 없이 치러지는 거대 선거가, 관여된 행위자들이 의도적으로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얼마나 나쁘게 치달을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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