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1일 토요일

철도노조 파업 이제 출구를 찾아야 한다

철도노조 파업 이제 출구를 찾아야 한다.

그 이유는 철도노조 파업사유가 정당성을 결여해서도, 또 파업장기화에 따른 국민불편이 가중되어서도 아니다. 무엇보다 철도노조를 위해서다. 또 두 번의 민주파 정부와 보수파 정부를 지나며, 사실상 궤멸되다시피한 한국사회내 민주적 노동운동의 몇 안되는 조직기반을 보전하기 위해서다. 그마저도 다 박살나고 나면, 훗날 괜찮은 정당과 리더들이 등장하고, 의미있는 사회경제적 변화를 시도할 때, 가뜩이나 재벌-기득이익의 압도적 힘의 불균형에서 누가 그 힘이 될수 있을까?

노사 모두 알고있듯이, 현재 갈등이 되는 철도라는 공적서비스의 소유와 운영의 바람직한 형태의 문제는 노사의 교섭과 능력 밖의 문제다. 또 그것이 국가전체의 중대문제이자, 한국사회 시민 다수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라 할 때, 노사교섭에 맡겨져서도 안된다. 정부와 정당이 결정해야 할 일이다. 즉 그것은 정치의 몫이다.

이를 왜 개별노조의 사활적 단판승부로 해결을 보려하나? 우리는 지난정권에서 MBC가 총대 맨 언론노조 파업의 기억을 갖고 있다. 그 당시에도 개별 노조에, 그 조합원들에게 한국 언론의 미래(그것이 맞다면)를 결정짓는 싸움을 떠밀어 놓았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한국 민주화의 우연적 산물이자, 질적으로 꽤나 괜찮았던 공영방송 MBC의 타락이다. 당시 투쟁의 결과로 우리는 MBC를 잃었고, 한국의 시민들은 개인소유의 SBS와 재벌종편 JTBC를 저울질하며 '믿어도 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MBC는 아마도 과거 동아일보가 걸었던 전철을 걸을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이, 전적으로 MB정부의 나쁜 언론정책과 노조탄압 때문만이라고 할 수 있나? 패배가 예상된 싸움, 어쩌면 다른 단위(즉 정치)가 떠맡아야 할 싸움을 홀로 뒤집어선 노조 지도부의 전략적 오류와, 이를 등떠민 '깨어있는' 시민사회의 문제와 책임은 없는가?

이대로 멈추지 않고 달리면, 철도노조는 MBC처럼 장렬하게 산화할 것이다. 이익결사체의 성격을 가진 노조와 그 지도부가 유독 한국에선 '정치적 힘의 관계', '이해의 조정과 타협', '미래를 위한 전략적 후퇴' 등과 같은 '전략적' 사고는 찾아보기 힘든가? 마치 레미제라블의 바리케이드의 어린 혁명가들처럼 최종적 싸움과 최종적 승리만 부르짖는다. 그런 태도는 이익결사체인 노조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낭만주의적 혁명 동아리에 맡겨둘 일이다. 국가와 국민들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고, 먼저 자신들과 조합원들 이익을 중심으로, 차분하고 냉정하게 계산하고, 멀리 길게 볼 것을 권한다.

사회 중대 갈등의 해결을, 영혼 없는 정치관료 몇명을 앞세우고, 수많은 어린 전경들에게 맡겨놓은 박근혜-새누리당은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그러나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역시 무책임하고 비겁하다. "철도노조의 문제제기는 충분히 알겠다. 민영화 방지방안을 비롯해, 철도산업 및 공공서비스의 발전방향에 대한 논의는 국회와 정치권에 맡겨달라."라고 왜 나서지 않나? 그들은 철도노조의 파업과 저항이 박근혜 정부에 가져올 정치적 부담과 타격에 그저 희희낙락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러나 '반사이익'의 김치국을 마시는 민주당의 생각과 달리, 이런 사태전개에 정말 행복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특징 또는 문제는, 민주주의 후퇴나 독재가 아니다. 그들 역시 곧 있을 중간선거들의 결과에 정권의 명운이 좌지우지되고, 다음 총선과 대선결과에 따라 그들의 자리와 권력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 민주주의의 말(pawn)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저 행태와 문화에서,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 내지 페티시를 가진 정치적 지체자에 다름아니다. 지난 1년을 돌아 볼 때, 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문제이자 특징은, "아무것도 하고 싶은게 없는,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라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냥 '국가수반으로서의 대통령' 흉내를 내는데만 관심있어 보인다. 외국정상들과 만나고 사진찍고, 번지르한 정치적 수사만 늘여놓고 건배하는 그런 것 말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행태에서 민주사회의 정치리더보다는 마치 영국여왕과 더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철도노조의 파업은 또는 잇따를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의 저항의 확산은 오히려 박근혜 정부를 도와주는 일이다. 마땅히 할 일도 없고, 뭘 해야 할 줄도 모르는데, 법질서 확립, 과격하고 기득이익화된 거대노조와의 성전이라는, 대처와 레이건에서 그 모델을 찾을 수 있는, 강력하고 힘 있는 보수지도자의 능력과 이미지를 과시할 기회만 제공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 판을 벌여주는가? 아마도 지금 철도노조가 더 이상의 논의는 정치권에 맡겨두고, 파업을 정리한 다면, 가장 입맛을 다실 이들은 현 집권세력이다.

나아가 이런 공안적 투쟁정국의 지속은 정작 한국사회와 정치가 당면한 핵심문제에 다가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앞서 말했듯이 박근혜 정부는 뚜렷한 국정과제도 실천의지도 없는 '보기드문' 정부이다. 하기에 선거 때 마지못해 제출된 그의 공약들이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비단 복지정책만이 아니라 '창조경제'라는 언어유희를 제외한 모든 것이 다 사라졌다. 그렇다고 대통령의 공백을 새누리당이 나서 채우는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운영하고, 중대한 정책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또 집요하게 제 할일을 하는 정부부처의 고위관료들이다. 문제는 그들이 퇴임 전에는 국민이 아니라 거대사익을 위해 복무하고, 퇴임 후에는 재직시 공적을 인정받아 그 일원으로 편입하는, 부패한 사적 이익집단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이번 수서노선 분리 및 별도 법인화 시도가, 박근혜 대통령 또는 새누리당의 한국 공기업의 미래와 발전의 고민을 담은 종합적 체계적 계획이라면, 설령 그것이 보수적이라 할지라도 어쩌면 다행일는지 모른다. 그러기보다 아무 관심도 없는 대통령 뒤에서, 퇴직 후 고위직으로 재취업할 수많은 준공적 유관기관들을 거느린 경제부처의 모범을 따르려는, 국토부 관료들의 집요한 의지와 노력의 산물인 것은 아닐까? 새로 만들어진 희귀한 형태의 '공공기관' 수서코레일은 사장, 이사, 감사 등 적지 않은 고위직을 필요로 할 것이고, 이는 온전히 국토부 관료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오늘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면,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그에 대한 '충성'을 제외한다면, 어떤 의미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지 못한채 주변에 포진한 인사들의 권위주의 코스프레의 경쟁 때문이아니다. 한국민주주의가 진정 위기라면, 그것은 국가의 중대현안이 또 중심갈등이, 거대사익과 결탁돼 선출되지 않은 이들에 의해 관장되고, 정작 선출직 엘리트들은 이런 사태전개에 대해 무지하거나 관심조차 갖지 않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만약 '우리의' 투쟁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판승부가 될 수 없다. 지난하고도 또 지난할 것이다. 그러니 이번 파업은 잘 마무리하고, 긴 호흡으로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게 어떨까 생각해본다.

작성일. 2013.12.27 @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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