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개혁"의 지독한 역설. 현대 민주주의 자본주의와 긴장 속 공존을 특징. 정작 규제되어야 하는 것(자본의 힘)은 다 풀고, 규제돠어선 안되는 것(시민의 힘)을 규제하는 참담한 상황. Feb. 11, 2010
오늘(11일) 중앙선관위 계정이(@nec3939)가 트위터에 등장했다. 그리고 아래의 트윗을 시작으로 트위터에서 할 수 있는 행위와 없는 행위를 알리기 시작했다.
트위터를 이용하여 언제든지 할 수 있는 행위 -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를 하는 행위 -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반대의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선관위의 이런 움직임이 그 자체로 틀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거법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한 법 위반과 이에 따른 곤란을 예방하는데 있어 긍정적 효과를 가질는지 모른다.
사실 다가올 6월 지방선거를 대비한 선거/사정당국의 불법 선거운동 단속 의지와 작년 11월 이후 가입자를 극적으로 증대시켜온 트위터와의 충돌은 불가피 한 것이었다. 그리고 충돌의 모습은 대체로 예견된다. 그간 분명한 정치적 선호를 가지고 정치적 의견개진을 피력해 온 적지 않은 수의 사용자들은 강하게 반발할 것이고, 선관위와 사정당국은 현행 법을 내세워 강한 단속 위협을 꺽지 않을 것이다. 충돌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몇몇 시민사회단체에 소속된 사용자 혹은 몇몇 '용감한' 사용자들은 "악법에 맞서 불법으로 투쟁할 것"이며, 다시 그들 중 일부는 그간 그랬던 것처럼 기소와 재판을 거쳐 벌금형에 처해질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사용자들은 법적 조치에 대한 두려움 혹은 불편함에 결국 굴복할 것이며, 자기검열을 강화할 것이다. 그렇게 트위터를 둘러싼 논란은 마무리 될 것이다. 여기서 이것이 MB 정부 혹은 MB 정부하의 사정기관의 비민주성과 야만성을 드러내는 사례로 사용될 수 없다는 점이 강조 되어야한다. 민주화이후 그들은 줄곧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또 사정기관들이 현행 법 테두리 내에서 행사하는 법 적용 자체를 아예 부정할 근거 역시 없다.
최근 하나의 다른 흐름이 목격된다. 이미 트위터와 진보매체를 통해 가시화 되고 있듯이, 진보/개혁정당과 단체 그리고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한 트위터에서 자유로운 정치적 의견 표명에 대한 국가 사정당국의 개입을 막기 위한 선거법 개정논의가 그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시도가 가져올 성과에 대해 회의적이다. 나아가 트위터를 내세운 그 같은 즉자적 반응과 논의가 문제의 본질에 전혀 접근하지 못한 미봉책에 불과하며, 따라서 이는 "개혁성" 혹은 "선명성"을 내세워 단기적 정치적 이득을 꾀하는 시도가 아닌가라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혹자는 "당신은 트위터에서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표명과 발언의 자유가 가치 없다고 생각하나? 또 "이를 지키기 위한 선거법 개정 시도의 개혁 정치인들의 진정성을 진정 모른다 말인가?"라고 힐난조의 질문의 던질는지 모른다.
이에 대한 필자의 간명한 답은 "별루", "잘모르겠는데" 이다. 추후 자세한 논의가 이어지겠지만, 현재와 같은 "규제 중심의" 선거법 그리고 가공할 권한/자원을 보유한 선관위의 선거에 대한 '사정적' 접근이 압도하는 상황에서, 시민의 자유로운 정치적 발언권은 트위터 혹은 온라인 공간에서만 제약되는 것이 아니다. 선거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시기, 자격을 갖춘 사람에 의해, 아주 제한적인 방식으로만 행사되는 것이 한국 시민의 정치적 권리이다. 그런데, 왜 유독 트위터 공간에만, 혹은 트위터 이용자에게만 더 큰 정치적 권한을 허용해야 하는가? 답하기 어렵다.
따라서,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선거법 개정논의가 한국 선거법 전반, 특히 민주화 이후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진행된 그 변천과정에 대한 구조적이고 종합적 진단과 평가, 그리고 단순히 눈앞에 닥친 지방선거가 아니라 길고 긴 연구와 논의, 정당과 시민사회, 그리고 주요 정당들간의 정치적 타협의 과정을 염두에 두지 않는 한, 그런 시도가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를 주창하는 정치인 혹은 정당이 만약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값싼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한 행위에 다름 아닐 것이며, 모른다면 그 정치적 판단력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 그런가?
"놀라울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선거법은 권위주의의 잔재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보수 정치세력 혹은 선관위를 포함한 사정당국의 창조물도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YS 정부하에서 1994년 "혁명적" 선거법이 만들어진 이래로, 그것은 항상 기본적으로 국회 정개특위라는 초당적 논의와 협상의 산물이었고, 그 내용과 방향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정치인, 그룹이 주도한 것이었다. 이런 흐름은 DJ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고, 나아가 제도권 밖 개혁그룹의 광범한 참여가 이뤄졌다. 지난 민주정부들에서 선거법 논의를 주도한 인사들은 보수정당도 아니고, 부패한 정치인들도 아니다. 물론 그들의 거센 '개혁' 저지의 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며, 따라서 단기적인 반동은 항상 존재했고, 그 과정은 지난한 것이었지만, 그때 그때의 최종 결과물은 조금 부족한 점은 있을지은정 항상 제도권 안밖의 진보/개혁적 인사와 그룹들이 변화시키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지난시기 선거법의 변화를 주도했던 이들과 현재 선거법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사실이 못된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왜 트위터에서 선거운동을 막느냐라는 지엽적인 문제도 아니고, 반민주 파쇼정권과 그들의 주구가 우리의 선거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있다는 거짓된 정치선동이 되어서도 안된다. 질문되어야 할 것은 "왜 우리가 이런 선거법을 '개혁'이란 이름으로 갖게 되었냐"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의 정치개혁을 지배한 제일 화두는 단연 부패척결 이었다. 그것은 YS 정부의 "깨끗한 정치", DJ 정부의 "저비용 고효율정치", 노무현 정부의 "청정정치" 등으로 이름을 달리하며 진화해 왔다. 이런 문제의식은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정당이, 또 동일 정당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신진의 개혁성향의 정치인이 권위주의적 유산을 가진 상대 정당 이나 부패적 정치 게임에 이미 적응한 기성 정치인들을 공격하고, 지지를 동원하기에 적합한 화두였다. 그리고 "한보사태", "대선자금 수사" 등 주요 정치적 스캔들이 일어 날때 마다, 그래서 보수/부패 정치세력의 방어력이 현저히 약해 질때마다, 그들은 부패 정치(정치인) 척결을 위한 제도개혁을 경쟁적으로 내세웠고, 그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의 선거법은 완성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런 선거/정치개혁이 비단 개혁/진보 정당/정치인들만의 전유물도 아니었고, 그들의 힘만으로 이뤄질 수도 없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일부 기득 유력 정치인을 제외하고, 개혁/진보파 정치인들과 더불어, 개혁의 순간에 '정치부패 척결'을 내세우며 동맹에 동참했던 세력은 보수/진보언론, 주류 정치학계, 재계, 검찰과 선관위를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가히 부패담론을 앞세운 정치개혁 동맹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민주화 내내 계속된 부패에 방점을 찍은 정치개혁 그리고 선거법 변화의 최종 종착지는 2004년 소위 '오세훈' 선거법이란 '괴물'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2004년 정치개혁법을 사실상 입안하고 일부 부패정치인을 제외한 광범한 지지를 이끌었던 범개협(박세일 위원장)이란 단체는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작품이었다. 이를 보고 혹자들은 거 봐라 보수적인 한나라당의 최병렬 대표 그리고 오세훈 의원의 작품이 아니냐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최병렬 대표는 당시 소위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벗고, 당내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에서 였지만, 가장 개혁적인 스탠스를 취했던 이였다. 현 서울시장으로 개혁적 이미지를 상당히 훼손한 오세훈 의원 역시 당시 기성정치에 절망한 유권자들의 분노에 '총선불출마'로 반응함으로써 환호를 받은 아주 아주 '개혁적'인 정치인 이었다.
어쨓든 그들의 작품이 아니냐고? 이렇게 질문하면 가장 서운해 할 이는 열린우리당일 것이다. 당시 언론보도는 잘 보여준다. 열린우리당이 2004년 선거법을 '오세훈 법안'으로 작명하는 언론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반박했는지, 또 한나라/민주 양대 보수정당에 맞서 결사적으로 범개혁 개혁안을 지켜내기 위해 열린우리당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노력했는지를 열변하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주장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당시 열린우리당의 당 의장은 정동영 의원이며, 정개특위 민주당 위원장은 천정배 의원이다).
문제/사태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면서 좋은 해법을 만들 수 없다. 그렇다면 진보개혁파가 주도로, 한국 정치의 문제를 '부패'의 문제로 정의한 정치개혁, 그리고 그 산물로서의 선거법의 핵심 문제는 무엇인가? 그 핵심은 그것이 "어떻게 하면 부패의 가능성과 공간을 최대한 차단할 것이냐"에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민주주의, 그리고 선거공간에서 부패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지는 모든 정치개혁/제도변화의 문제를 부패의 문제로 환원할 때, 정작 중요한 문제들이 다뤄지지 못하고, 혹은 부패 보다 더 중요한 민주적 원리와 가치가 훼손당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지적코자 하는 것이다. 어떻게 정당간의 생산적인 정치적 경쟁을 증대시킬 수 있나? 어떻게 유권자의 참여와 정보 증대를 보장할 것인가? 정당의 대표성과 비례성은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등의 보다 근원적인 민주주의 원리와 가치의 실천이라는 문제의식은 민주화 이후 제도변화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문제 의식이 없는데 이에 대한 제도적 해법이 마련되지 않는 것은 자명하다. 부패척결의 구호를 내세워, 진보/개혁 그룹이 주도의 정치개혁 동맹은 기득부패 세력의 강고한 저항을 뚫고, 선진 민주주의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조치들을 하나씩 완수해 가기 시작했다. 거듭된 개혁을 통해 선거운동의 방법, 기간, 횟수는 현저하게 축소되거나, 아예 사라졌다. 다른 나라 선거운동 보도에서 자연스레 등장하는 선거운동의 풍경 -호별방문, 후보옥외연설회, 정당연설회, 시민들의 자유로운 후보/정당 지지 피켓팅-은 우리에겐 머나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 결과 한국의 시민은 정해진 기간 동안, 법 조문에 구체적으로 명기된 방식을 벗어나서 자유롭게 정치적 의견과 지지를 표명하지 못하게 되었고, 정치인 역시 정작 선거운동 기간에도 유권자에게 자신을 알릴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민주주의의 작동의 핵심 메커니즘이며, 산 교육장으로 일컫어지는 선거는 민주화 이후 정치개혁을 통해 그 권한과 자원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켜온 선관위의 관리의 대상쯤으로 전락해 버렸다. 슬픈 것은 이런 변화가 보수가 아닌 진보의 기획이며, 개혁의 실패가 아닌 성공의 결과라는 데 있다.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와 친화성을 갖는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갖지는 않지만,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자본주의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수와 자본의 크기라는 각기 다른 원리에 의해 운영되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긴장 속의 공존을 그 특징으로 한다. 민주화는 따라서 단순히 합법적 복수 정당의 존재나, 통치자의 문민화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건설적 공존을 가능하도록 양자의 역학에 있어 정치의 힘(수의 힘)의 획기적 증대와 우월성을 확보하는 과정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민주화를 통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정치부문에서의 억압 즉 규제를 완화하는 반면, 그간 통제되지 못한 자본, 기득집단의 힘은 규제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은 민주화이후 개혁의 지독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요컨대, 트위터로 불거진 이번 선거법 논란에서,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는 따라서 트위터에서 자신의 좋아하는 정치인에 대해 글질을 할 수 있냐의 문제로 협소화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건설적인 방향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정면으로 부딪혀야 하는 문제는 왜 민주화가 그리고 개혁이 우리의 기대와 다른 결과를 낳았는지에 대한 성찰과 진지하고 끈질긴 토론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초해 거칠게 현행 선거법 개정의 방향을 말해자면, 그것은 현행과 같은 "선거법에 기재된 운동만 허용하는 열거주의(positive list)"에서 "불법으로 기재된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허용하는 포괄주의(negative list)"로의 변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
2004년 오세훈 선거법의 내용을 사실상 결정한 정개협 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박세일(위원장), 박태범(대한변협), 백승헌(민변), 이성춘(한국일보 논설위원), 최규철(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장훈(중앙대), 손봉숙(한국여성정치연구소), 김민전(경희대), 신철영(경실련), 김기식(참여연대) 김효열(중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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