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7일 토요일

[긴글] 일 없는 대표 일 많은 시민

<from daum blog, 작성일 2008.6.7>

일 없는 대표, 일 많은 시민

1. 불만의 대상

난 요즘 불만이 많다. 가끔 참기 힘든 화도 밀어닥친다. 그 대상은 특정되지 않고 오락가락한다. 그것은 아마 현시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부터 미움 받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일때도 있고, 하는 행동과 말 그리고 생각에서 그와 별 차이가 없지만, 그의 눈부신 활약 덕분에 그 분노와 조롱의 눈길에서 약간 빗겨서있는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일 때도 있다 (그러나 요즘 시민들이 워낙 똑똑하고 부지런해 그들의 내상도 이미 상당하다). 그러나 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명박대통령, 한나라당, 조중동 그리고 자충수를 일삼는 온갖 종류의 보수세력들에 대한 나의 불만과 화는 크지 않다. 아마 별다른 기대도 미더움도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나의 주된 불만과 화의 타겟은 주로 민주당(선진당, 창조 등은 논외로 한다), 민노당, 그리고 진보신당 등의 소위 진보 혹은 민주개혁 성향의 야당과, 여기에 속해있거나, 속했었거나 혹은 속한거나 진배없는 정치인과 활동가들이다. 이 중에서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현 사태속에서 뭔가 하려고는 하지만 그 "진정성"을 머리와 세(勢)가 따라주지 않기에 조금 봐주자. 언젠가 그들에 대해서도 불만을 쏟아놓을 때가 있을터이니...


2. 일 없는 대표

문제는 민주당과 그 일당들이다. 왜 우리 갖고만 그러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너희들이 원내 제1야당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그들이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 두 번의 전국단위 선거에서 그렇게 번드르하게 민주와 개혁, 그리고 진보를 거품 물며 지지를 호소했던,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가족이 행복한 시대”를 만들겠다던 "정동영"은 수많은 가족들이 자신과 이웃의 건강을 위해 서울광장에 텐트치고 나앉은 이 상황에 무얼 하고 있는가? 선거에서 떨어지면 끝인가? 거봐라 나를 찍지 않아서 그 고생하는 거라 고소해하는가? 미안하지만 말이다. 시민들은 당신이 이럴 줄 알고 딱 그만큼만 지지해준거다. 총선직후 민주당의 보수화를 막고 진보개혁성을 지키겠다며, 그래서 새로 구성될 당지도부에 도전하겠다고 떠들던 몇몇은 또 왜 이리도 잠잠한가? 정세균, 천정배는 무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도 발언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고, 조직하지 않는 그들이 말하는 진보개혁은 도대체 무엇이고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도대체 모를 일이다.

최근 보도를 보면 그들의 맘도 편치는 않은 듯하다. 똥싼 아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한다고 한다. 장외투쟁하자니 시민들의 냉소가 두렵고 의회에서 뭔가를 하려니 마땅히 할 수 있는 것도 그럴 자신도 없다. 그래서 한국사회와 민주주의의 명운이 거리에 모인 촛불 숫자에 오락가락하는 비정상적 상황에서, 그들은 참 할일이 없고 한가하다. 낮에는 의회와 당사를 밤엔 거리를 아무 목적 없이 그저 배회한다.

3. 일 많은 시민

그들의 대표들에 비하면 그들을 대표로 만들었던 시민들은 요즘 참 바쁘다. 그들은 낮시간엔 팍팍해진 경제사정속에서 그저 버티기위해 각자의 일터에서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밤이 되면 촛불 하나씩을 들고 나와 아스팔트를 부지런히 누빈다. 그 일은 제법 재밌기도 하고 때론 신나기도 흥겨울 때도 있지만, 때로는 물도 맞고 매도 맞고, 매운 연기도 들이마셔야 하는 고역이 될때도 있다. 그것이 다는 아니다. 촛불시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또 할일이 태산이다. 먼저 인터넷에 접속하면 그날의 숙제들이 쏟아진다. 조중동에 광고한 회사들의 전화번호 목록들을, 내일 항의전화 하기 위해 챙겨야 하고, 그것이 인터넷 사이트라면 당장 회원해지도 해야 한다. 그뿐인가? 광우병, 의료, 수도 민영화, 대운하, 사교육 강화 등, 언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는 이명박정부의 프로젝트들에 뒤통수 맞지 않기 위해, 인터넷의 힘을 빌려 의학, 수의학, 토목학, 정치학, 국제관계학, 교육학에 대해 전문가 못잖은 수준까지 공부도 해야 한다. 그러구나서도 우리네 시민들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혹시나 나를 대신하는 오늘밤 거리의 동료들에 뭔 일이 있을까 걱정하며 오랫동안 인터넷 생중계를 떠나지 못한다. 

4. 밥 숫가락을 올리기위한 두 가지 예의

이제라도 촛불시위에 참가하겠다는 것 그 자체를 탓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촛불시위는 참가하겠다는 그 누구도 막지 않는다 다만 좀 구박할 뿐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한 달째 물맞고 매맞아가며 차려놓은 밥상에 밥숫가락을 얹으려 한다면 최소한 다음의 두 가지 예의는 갖추어라.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당신들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외면과 냉소 그리고 면박과 핍박은 감수해야한다. 자업자득이다. 따라서 첫 번째 예의는 시민들의 당신들에 대한 분노와 항의를 불편해하거나 언짢아 하지 않으며 함께 하는 것이다. 묵묵히 온몸으로 받아내며 견디라는 것이다.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이 따가워도 꿋꿋이 대오의 최선두에 앉고, 대놓고 욕할지라도 얼굴 붉히지 말고 주변의 시민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라. 어쩌면 마치 비탈길을 굴러내리는 눈덩이처럼 촛불시위 참여자들이 점점 더 불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시민들이 당신들, 야당에 대해서도 일말의 기대를 포기했다는 것, 그래서 결국 위험하고 피곤하더라도 자신들이 직접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절절히 깨달은데 있다. 그러니 나와서 들으라.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화가 났으며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또 적으라. 그걸로 끝이 아니다. 오전엔 의회로 나가라. 그리고 어젯밤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 각양각색의 시민들의 각양각색의 어려움과 고민 그리고 불만들을 정책으로, 야당에 대한 요구로 구체화하라. 그리고 이를 여당에 요구하고 강제하라. 안 들어준다면? 밤에 열리는 거리의 의회에 또 등원해서 보고해라. 그러면 시민들이 다른 지시와 힘을 줄 것이다. 단순히 옆에 있어주는 것이 아니라 대표로서 책무를 다하는 것, 그것이 두 번째 예의이다. 단순히 촛불하나 보탤 심상이라면 나오지 마라. 왜냐면 당신들 나오는 것은 밑지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누가 있을까?

그러나 이렇게 할 야당 정치인이 있을까? 사태가 이지경이 되도록 애써 모른척 한 그들인데. 갑자기 달라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결국 의사당이 아닌 거리인가? 결국 대표들이 아닌 시민의 직접행동인가? 정치인 대표들은 너무나 일이 없고 시민들은 할일이 너무 많다는 것, 그것이 이번 문제의 원인인 동시에 현재 한국정치와 민주주의를 요약하는 특징이 아닐까? 아울러 그것은 이 사태의 끝이 파국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강하고 책임있는 야당이 없기에 우리네 시민들은 오늘밤 또 청와대로의 위험하고 고단한 여행을 떠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