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9일 화요일

[짧은글] 님 조선일보 역쉬

<from tistory blog>

트윗을 하며 한 번씩 흥분할 때가 있다. 사실 이제 익숙해져, 그리고 나이들어 왠만한 것에는 잘 자극받지 않고,
그럴려구 노력도 하는데, 한
번씩 피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요즘 내게 그런 테마는 무엇보다 "유권자 자격론"이다 (깨어있는 시민론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선 꼭 길고 정확한 글이 필요하기에 일단 패스.


지금 언급할 주제 역시 그러하다. 조선일보사와 관련된 누군가의 신해철 비판 멘트에 대한 누군가의 "님 조선일보? 역쉬"라는 멘트를 발견했고 순간 또 흥분했다.

그리고 나의 첫 트윗은 "이런 반응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무엇이 이들을 극단적인 포지션으로 내보나? 아마 민주화 이후 우리에게 일어난 가장 나쁜일" 이었다. 날 울컥하게 만드는 것은 그냥 그들의 조선일보에 대한 정형화된 태도가 아니다.

나도 조선일보를 어떤 측면에선 동의하지 못하고, 어떤 측면에서 혐오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측면에서 나는 동의하지 못하나?

나는 그들의 보수기득이익 혹은 질서 편향의 관점을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은 너무나 그쪽 편향의 관점과 이익만 철저히 관철되는 오랜 시간을 보냈고, 이에 대한 교정이 필요한 시점에서 어떠한 그런 방향의 시도마저 거부하는 것은 단순히 부분을 대표함을 넘어서, 그들이 어쩌면 봉사한다고 믿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반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문제 삼는 핵심은 그들의 이념적 보수성, 사회 상층 일부 이익에 대한 편향성에 있지 않는다. 이익이 다원화된 현대 산업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세력 혹은 이를 어떤 식으로던 반영할 수 밖에 없는 미디어 역시 부분의 대표라는 본원적 한계를 피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익(국익) 혹은 루쏘식의 전체이익의 대변을 자임하지만, 언제나 부분의 대표일 수 밖에 없다. 왜냐면, 전체이익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하더라도 아주 소수의 사례에 국한 될 것이다.

그들의 문제는 그들이 비판자들이 흔히 부르듯 찌라시라는데 있다. 찌라시란 무엇인가? 정론지가 아니다는 것이다. 정론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는 없다. 그리고 정론지와 아닌 것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 같은 것이 있을리도 없다. 다만, 우리는 현실에 존재하는 여러 신문들을 보고, 어떤 것은 정론지다 어떤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이념, 이익으로 정론지 여부를 판가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중요한 잣대는 사실, 그리고 이를 해석하는 어떤 태도이다. 자신들이 표방하고 대표하는 이념과 이익을 위해 사실을 기꺼이 과장, 왜곡, 편의적 취사선택을 자행하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면 그것은 정론지가 아니다. 반면에, 사실 그 자체에 풍성한 기술과 분석에 자신들의 특정의 이익과 이념이 녹아들어 있을때, 그러나 그것이 사실을 훼손과 왜곡을 최소화 할 때, 끈임없이 그러기 위한 자정적 노력을 견지할 때, 우리는 그것을 정론지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뉴욕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 못지 않게, 파이낸셜 타임즈와 이코노미스트를 좋아하고 또 높이 평가한다. 그들의 풍부하고 정확한 사실기술과 분석, 그리고 그들의 이념적 렌즈를 통해 걸러진 해석은 일차적으로 나의 지식 증대를 위한 좋은 정보가 되고, 이차적으로 나의 관점의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그들의 해석이 아니라, 그들이 보여주는 사실의 힘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기준에서 한국의 언론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정론지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분을 위해 어쩌면 그 상위에 있고 기본에 해당하는 저널리즘의 기본 준칙을 어기는 데 서스럼이 없다. 나아가 그런 행위에 대해 일말의 부끄러움을 찾아 보기도 어렵다. 

문제는 그들의 그런 행위가 공동체를 상대에 대한 불신과 증오로 가득찬 분열의 공간으로 만듦으로서 부분의 이익마저 대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는 상대적으로 약자의 대표를 자임하는 세력에게 더 나쁜 결과를 낳는다. 왜냐면 기득이익은 기득이익 이기 때문에, 언론의 도움 없어도 그만이고, 사회가 극단적으로 분열되더라도 자신의 개인의 이익을 적어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격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쪽의 경우 문제는 심각하다. 가난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언론이나 정치세력에게서 좋은 그리고 공신력있는 대변자를 만나지 못할때, 그들이 기댈 곳은 자신의 맨주먹 뿐이고, 그 삶은 부자들의 그것과 동일할 수 없는 적나라한 투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특정 언론의 정론/찌라시 여부는 사실 나를 발끈하게 한 핵심 요인은 아니다.

그보다는 제목의 멘트가 압축하듯, 어떤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무작위로 단지 조선일보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야만이다. 어떻게 한 개인의 행위를 그 행위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속한 (그것도 어쩌면 불가피하고 복합적인 이유로 )종교/인종/거주지/직장만으로 평가하고 재단할 수 있나? 그런 행위와 발언을 어떻게 소위 상식이 승리하는 사회를 운운하는 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행할 수 있나하는 것이다.

일전에도 썼듯이, 우리가 민주화 이후 잃은 가장 큰 것은 단순히 정권이 아니다. 우리가 잃어 버린 가장 큰 것은, 한 때 가장 건강하고 비판적인 한 집단이다. 그들은 그들을 참여하게 만든 한 정치인과 동기화를 진행시키는 와중에, 어느 순간 그들이 싸우는 적과 가장 닮은 어떤 괴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을 잃은 것이 민주화 이후 가장 큰 상실이기에, 그들을 되찾는 다시 그들에게 건강한 관심과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으로 되돌려 놓은 것, 그런 리더의 출현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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