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6일 목요일

[짦은글] 박종우 보도와 한국언론과 군중주의

지금 한국사회를 휩쓰는 이 기운을 군중주의라 부를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한국 언론과 기자들에게 '네티즌(의 의견)'은 여론 집약을 위한 여러 원천 중 하나(그것도 신뢰도에서 많이 떨어지는)가 아니라 여론의 전부가 돼 버린 듯하다. ‘디지털취재부’ 등의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순전히 네티즌들의 의견만으로 구성되는 황당한 기사가 크게 늘었다. 또 그런 종류의 기사의 범주도 연애, 스포츠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 활용면에서도 단지 시민들의 의견 스케치를 넘어, 파워트위터리안이나 네티즌 투표의 형식을 빌어 기사 자체의 권위와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이르렀다.


이와 같은 한국언론의 네티즌 의존 또는 중독은 현재 한국사회 전반을 휩쓰는 ‘군중주의’와 크게 관련 있어 보인다. 군중주의란, 거칠게 정리하자면, 익명성(이름과 소속을 밝히지 않음)에 기반한 무정형의, 그래서 행위 그 자체와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 모두에서 책임을 지지하고 묻기 어려운, 개인들이 특정한 이슈에 대한 공통의 의사개진과 관철의 무리짓기-본질적으로 즉자적이며 그래서 변덕스럽고, 자중 과도한 흥분과 열정을 동원하는-에 사회 전반이 휘둘리고 굴복하는 현상을 요약하는 것이다.

박종우 선수 구제를 위한 축구협회의 행동에 대한 아래 기사(들)는 전형적인 군중주의이다.

왜 그런가?

첫째. 기사는 박종우 사건이 맨 처음 왜 문제가 되었는지를 객관적(국제적) 기준에서 말하지 않는다. “뭔 잘못을 저질렀던 그냥 내 새끼 잘못없다” 이다.

둘째. 앞으로 사건이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에 도달하는지 충분히 알려주지 않는다. 어떤 경로로 사건이 제소가 되었는지, 향후 어떤 절차를 거치게 되는지, 과거 비슷한 사건들에서 판결은 무엇인지, 비슷한 문제에서 다른 결론이 나왔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 사태해결을 위해 보이지 않는 정치가 중요한지, 공개적 여론몰이가 필요한지. 아니면 관련 당사자(일본)의 입장과 이해가 중요한지? 아무것도 없다. “그냥 내 새끼는 내비둬” 한다.

일본 축구협회에 사과메일을 전달한 한국 축구협회의 행위가 왜 잘못된 것인지를, 그것이 영어 작문이 틀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해당기사를 통해서는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이 기사는 기사가 아니다. 그것은 이번 박종우 사건을 보도한 아무 기사를 클릭해도 쉽게 접하게 되는 어린 네티즌들의 댓글을 문법에 맞게 정리한데 불과하다.

“우리 선수가 우리 땅을 우리 땅이라 했는데 씨바 누가 뭐라 그래? IOC, FIFA. 니들이 뭔데. 이 모든 배후에는 일본놈덜이 있을꺼야. 근데 병신 같은 축구협회 놈덜이 자존심 상하게 사과를 하고 난리야. 그런 사과 따위 할꺼면 그냥 메달 박탈하라고 그래. 우리가 메달도 하나 만들어 주고, 뭐 특별법 이런거 만들어 군대도 면제시켜주면 되잖아 씨바”

만약 박종우 사건에 대해 FIFA와 IOC의 결정에 일본 축구협회의 의견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된다면, 또 그들의 이해와 선처표명이 정상참작에 중요한 요인이라면 난 축구협회의 행위가 옳은 것이라 생각하며 지지한다. 또 그렇지 않더라도, 축구협회의 움직임은 일본과 무관하게 한국 축구협회가 소속 선수의 행위가 부적절한 것이라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으며, 향후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 의지로 FIFA에 받아들여질 것이기에, 크게 그릇된 것은 없다고 본다. 아니면 별로 할 수 있는게 많지 않기에.

축구협회 서신의 적실성 또는 효과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다. 나아가 박종우 선수의 문제된 행위 그 자체에 대한 평가도 다를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언론은 미디어는 대중들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보다 깊고 정확한 이해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언론은 대체로 정반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자의 네티즌화” 지금 한국사회를 휩쓰는 군중주의의 한 단면이다

(* 나는 인터넷실명제 같은 장치에 기본적으로 반대하지만, 한시적으로 한국 언론과 사회가 더 이상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온라인 댓글에 그 작성자의 나이가 드러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러면 대학 공부를 마친, 그것도 아마도 좋은 학교에서, 기자들이 초등학생들의 댓글로 자신의 기사가 채워지게 만들지 않을 것 아닌가?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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