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30일 목요일

정희진의 "그들이 화학적 거세를 선호하는 이유"를 읽고

한 사회의 지배적 상식에 반론을, 그것도 효과적으로 제기하기란 힘든 일이다. 트라우마적 사건이 일어나고, 여론과 그 분노가 정해진 곳을 향해 내달릴 땐 더욱 그렇다. 해당 문제에 대한 전문지식만으론 부족하다. 여론에 굴복 또는 타협하지 않을 용기도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을 지혜와 끈기도 요구한다. 오늘 한겨레 정희진의 글이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 글을 통해서 나는 해당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해를 갖게 되었다.


성범죄에 대한 해법으로 추진되는 ‘화학적 거세’는 다음과 같은 ‘잘못된’ 상식에 근거하고, 이를 더 확산시킨다. 그것은 1) 성범죄는 선천적, 후천전 요인으로 호르몬계 이상을 일으킨 특수한 사람들의 개인적 일탈이다. 2)따라서 그 괴물(freak)들을 외과수술적으로 사회로부터 도려내, 주사요법을 실시하면 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현대사회의 모든 개인의 범죄와 일탈행위들과 달리 유독 성범죄(주로 남성에 의해 여성에 자행되는)만 화학적 요인에 집중하게 된 걸까? 왜 절도범, 살인범, 경제사범에 대해선 호르몬/유전자 조치를 진지하게 고민하진 않는걸까? ‘싸이코패스’나 ‘도벽’처럼 한 범죄 행위에 작용하는 화학적 요인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한 개인의 ‘성과 관련된 호르몬 상태와 변화’와 그의 ‘실제 성범죄 행위’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인과관계가 멀다는 것이다. ‘주사요법’이 상정하는 성호르몬과 성범죄 사이 관계 사이의 일반화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만큼이나 공상일 것이다.

개인의 여느 행위처럼, 일탈행위 즉 범죄 역시 두뇌와 관련된 ‘의식적인’ 것이며, 특정한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다. 성범죄를 만들어 내고 그 해결을 어렵게 하는 한국 사회의 객관적 인식과 조건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정희진에 따르면 그것은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회구조(남여 불평등)와 그 속에서 독버섯처럼 번식한 잘못된 성문화와 성인식(“남자을 위한 용기로서의 여성”)이 결합된 결과이다.

‘화학적 거세’는 그래서 우리의 관심을 미지의 영역으로 끌고간다. 정희진이 그것을 해법이 아니라 문제로, 또 문제를 가리거나 은폐하는 나쁜 ‘맥거핀’으로 보는 이유다.

# 참고로 맥거핀(MacGuffin), 또는 맥거핀 효과란 "작품줄거리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관객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묶어 둠으로써 공포감이나 의문을 자아내게 만드는 영화 구성상의 속임수"란다. 히치콕이 자신의 작품에서 널리 사용했던 기법. 몰랐던 개념인데 유용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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