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권자에 대한 지배적 해석 비판
그간 언론인, 정치평론가, 학자, 정치인 그리고 언론인들의 한국 시민유권자들에 대한 지배적 해석은 유권자의 비합리성과 타락을 강조한다. 이런 해석의 가장 큰 맹점은 무엇보다도 유권자들에게 매 선거 시 주어진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분명히 한국의 유권자는 변화지향적이고 개혁적인, 그러면서도 당선가능하고 능력있는 정당을 지지하지도 또 키우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유권자의 잘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손에 쥔 선택지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이후 한국의 유권자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현실가능한 최대치를 집단적으로 선택해왔다고 평가한다. 물론 그것은 혹자들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온건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러한 경향은 지난 2002년 노무현대통령의 당선과 2004년 열린우리당의 의회과반으로 종결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한 것은 작년의 이명박대통령의 당선과 지난 총선에서의 한나라당의 과반이다.
그러나 이 같은 집합적 결과가 한국유권자의 보수성과 비합리성을 반영한다고 보긴 어렵다. 첫 번째는 앞서 말한 듯 주어진 선택지와 크게 관련된다. 먼저 유력후보 가운데 능력 있고 상대적으로 변화지향적인 그래서 한국의 시민에게 “이상적인” 후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지지는 강요된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개별 유권자가 투표장에서 경험하게 되는 심리적 갈등구조를 얘기할 수 있다. 민주주의하에서 유권자는 하나의 종이돌(투표용지)을 통해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고민에 직면한다. 하나는 지난 정부(대통령이나 집권정당)의 공과를 평가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좋은 정부를 선택하는 것이다. 한 가지 수단으로 두 역할을 수행해야 대의제 민주주의가 부여한 내재적인 갈등이라 할 것이다. 비단 우리 뿐 아니라 서구의 연구에서 보여주는 것은 유권자들이 대체로 첫 번째 역할에 자신의 수단을 사용하는 경향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의 연구는 후자의 목적에 사용하는 것보다 그것이 합리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쉽게 말해 좋은 인물(정부)를 뽑는 것은 쉽지 않고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한 유권자가 주어진 정보를 꼼꼼히 따져 선택한다 하더라도, 그(그 정당이)가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는 좋은 정치를 할는지 알 수 없다. 미래는 불확실하며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유권자는 선거 시 현임정부의 공과에 대해 정확히 심판함으로써, 앞으로 당선되는 후보나 정당이 반면교사를 삼아 유권자들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렇게 볼 때, 지난 대선의 결과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간의 소위 민주개혁세력의 실정(失政)에 실망하고 화난 유권자들이 다른 유력 정당 후보에게, 그 후보가 변변치는 않더라도, 지지를 보내는 행위는 합리적이다. (노무현 정부의 그것이 실정인지 아닌지, 그리고 그 원인은 무엇인지 논쟁하지 않는다. 왜냐면 필자의 논리는 당시 대선당시 노무현 정부, 민주당 10년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는 형편없이 낮았다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지배적 분석은 종종 기권자에 대한 분석을 결여하다. 지난 선거결과는 기권율을 감안해본다면 보수당과 후보의 압승이 아니다. 이명박후보의 득표율 30%는 민주화이후 당선된 대통령 가운데서도 최저치이며, 그리고 한나라당이 패배한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이 얻었던 득표율보다 낮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민주화이후 최초로 기권그룹(37%)보다도 훨씬 밑도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유권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보여주는 것은 과거정부의 실정에 대한 평가가 압도한 회고적 투표, 그나마도 상당한 유권자가 선택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다. 즉 한국의 유권자는 비합리적이지도 않으며, 타락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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