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충분히 지적했지만 현재 민주당 경선은 문제가 많다. 그것도 너무 많다. 모바일 프라이머리로 요약되는 현행 제도는 왜 문제인가?
먼저 그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반한다. 지금과 같은 모바일 투표는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라는 민주선거의 가장 기본적 원칙을 보장하지 못한다. 왜냐면 현재 장치로는 어떤 후보의 열성적 지지자가 가까운 가족과 지인들의 휴대폰을 확보해 대리투표 하는 행위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첨예한 이해가 걸린 '정치의 세계'에서 유인은 존재하는데 막지 못한다는 것은 장려된다는 것이다. 과거 부정선거의 대명사인 독재시절 ‘고무신’ 선거도 결국 유권자를 투표장에 데려다 놓는데 머물렀지, 인주가 어디에 찍힐지 확정치는 못했다. 얼마전 국민들의 지탄과 조롱을 받은 통진당의 내부경선을 ‘태블릿 떼기’라 말할 수 있다면, 지금 민주당의 그것은 ‘휴대폰 떼기’이다. 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둘 다 부정(이 허락된)선거다. 투표에 한정할 때, 물리적 출석 없는 참여는 민주적 참여가 아니다.
다음으로 민주당의 이익에 반한다. 민주당의 이익은 결국 다가올 본선에서 승리해 정권교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내경선 제도의 목표는 무엇보다 본선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뽑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모바일 프라이머는 이런 목표에 복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왜 그런가? 지금 제도는 각 후보들이 사람이 아니라 휴대폰을 모으는 경쟁에 내몰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사람이 가지고 있는데 뭔 소리냐고? 맞다. 대체로 그렇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오픈프라이머리 제도 그 자체를 문제 삼으려는 것은 아니다. 또 민주당의 도입 취지를 이해못할 바도 아니다. 제대로 된 대의원-당원체계도 없고, 국민의 지지도 지극히 낮은 상태에서, 대선후보 선출 과정을 개방해 시민 참여를 증대시켜, 당심을 넘어 민심을 반영하는 경쟁력 있는 후보를 뽑겠다는 고민을 부정하긴 어렵다. 문제는 참여확대를 위해 도입한 모바일 투표와 현재 민주당의 상황이 나쁘게 결합될 때 만들어진다.
이른바 안철수 정국이다. 규범적 평가와 무관하게 그 메시지는 분명하다. 먼저 민주당을 포함한 기성 정당(체제)에 대해 한국 유권자들의 반감과 불신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둘째, 전체 유권자 중 30% 정도 되는 확고한 박근혜 지지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시민들이 제1야당의 라인업에 매우 불만족해 한다는 거다. 그래서 지금 민주당이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관심 없으니깐 빨리 끝내고, 철수하고 뭘 쫌 해봐 이러는 거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나? 열었다고 들어올 시민이 별루 없다는 거다. 그래서였는지, 민주당은 참여의 비용을 크게 떨어트리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것이 모바일 투표, 즉 비물리적 방식의 참여도 좋다한거다. 그러나 그 결과는 더 나쁘다. 일차적으로 역선택 등 불순한 의도의 참여자들이 들어온다. 한나라당 지지자, 안철수 지지자들 나름의 짱돌을 굴리며 민주당 경선에 들어온다. 뭐 그 수는 많지 않을듯 하다. 문제는 각 후보의 열성적 지지자들에 의한 참여의 ‘제조’가 일어난다는 거다.
제조? 그들이 가까운 사람들, 즉 가족과 지인들의 휴대폰을 확보하는 것이다. 엄격한 개인인증 절차가 있다고? 자기 가족 중에 특별히 정치에 관심 있는 구성원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가 지지하는 후보 투표해야 하니 휴대폰 좀 달라고 한다. 주민번호도 달란다. 가족이면 이미 알고 있을수도 있다. 이럴 때, “안돼, 너가 하려는 것은 옳지 않아”, “나는 다른 당, 다 른후보 지지하는데” 뭐 이러면서 거부하는 이들도 있겠다. 그러나 정치에 큰 관심 없는 보통의 사람들은 흔쾌히 또는 마지못해 그러나 가정의 화목을 위해 ‘순순히’ 휴대폰을 건넬 것이다. “이게 뭐라구”. 참여의 비용과 유인이 불일치 할 때, 제도는 쉽게 본래 의도에서 이탈한다.
이쯤되면 더 이상 ‘실’ 참여자의 수와 등록된 휴대폰 수는 같은게 아니다. 후자는 증식한다. 후보들 간 경쟁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휴대폰을 모으는데 집중된다. 경쟁의 결과는 결국 누가 더 많은 열성적 지지자를 갖고 있는지, 또 그들이 얼마나 많은 지인들을 끌어 모을 것인지에 달려있다. 이렇게 되면 민심 반영이라는 원래 제도 도입 취지 역시 사라진다. 즉 당내 경선의 시민개방을 통한 후보 온건화 효과는 프라이머리를 극단적으로(모바일 도입) 추구한 결과 사라진다. 여기서의 승리자는 더 이상 민심도 당심도 반영하지 않는다. 그것은 ‘조직화된 소수’들 그리고 그들의 헌신의 함수가 된다.
사람의 동원이 아니라, ‘열정적 소수의 헌신’이 중심이 되는 경선은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정당의 경선은, 아니 모든 선거는 단순히 승자를 확정하는 절차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내용은 선거 ‘과정’에서 주로 만들어진다. 경선도 마찬가지다. 정당에게 경선은 후보자들의 경쟁을 통해 다른 당과의 본선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후보자들간 경쟁을 통해 당의 기존 정강정책과 전략전술이 평가되고 수정된다. 후보들간 경쟁을 통해 상대당과 후보를 이길 수 있는 논리와 근거들이 만들어진다. 후보자들간 경쟁을 통해 해당 정당으로 돈과 사람이 모여든다. 요컨대, 경선은 전쟁(본선)에 내세울 병기(후보)를 ‘벼리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현재 민주당 제도는 이 모든 것을 휴대폰 확보의 문제로 돌려놓는다. 정책도 메시지도 TV토론도 연설도 다 뒷전이다. 오직 휴대폰이다.
필요없이 길어졌다. 마무리하자. 이글은 자주 인용되는 제도의 공정성 문제를 의도적으로 빠트렸다. 이는 해당이슈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경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모든 제도는 누군가에게 유리하고 다른 누군가에겐 불리하다. 이번 모바일 프라이머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기존의 당원-대의원 중심 선출도 그렇다. 휴대폰이 어르신을 차별한다면, 체육관은 젊은이를 차별한다. 모든 제도는, 모든 룰은 결국 편파적이다. 그래서 정치의 결과는 자주 본 경쟁이 아니라, 그 경쟁의 룰이 정해질 때 결정된다. 무엇을 말하나? 불리한 룰은 결정되기 전 문제제기 해야 한다. 저항이든 비토든 그때 해야한다. 일단 룰이 합의되고 경쟁에 참여하면, 공정성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말이다.
앞서 말했던 반민주성과 비효과성을 문제삼는 건 어떨까? 마찬가지다. 왜냐면 새로운 제도의 수혜자가 경쟁 도중에 제도변화에 동의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주어진 룰에 따라 최선을 다해 경쟁하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다. 자꾸 룰을 문제삼는 것은 그 개인에게도 당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얘기가 마뜩치않을 이들이 있다면 다음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스포츠 중계를 보면 우리 선수들이 지고 있을 때 해설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죠. 자꾸 심판 볼 필요 없어요. 경기에만 집중해야죠. 아직 끝난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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