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8일 월요일

[짦은글] 나는 왜 정동영을 신뢰하지 못하는가?

# 정동영 최고위원의 "나는 왜 한미FTA 재협상을 요구하는가?"를 읽고 쓰다

전당대회 이후 FTA 재협상 이슈를 공세적으로 제기하며 손학규 신임대표와 경쟁에 나선 정동영 최고위원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먼저 주요 정치인이 중심 현안과 이슈에 대해, 글로써 발언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좋은 일이며,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글은 역설적으로 내가 그를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먼저 그는 누가 뭐라하더라도 참여정부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핵심 리더로서 현재의 한미 FTA 협상을 만들었거나 적어도 만들어지는데 일조한 사람이다. 그의 글에 들어간 재협상을 요청하는 논리와 근거의 대부분은 새로 알려진 것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은 노무현-열린우리당 정부 시절 FTA 반대파들이 끈질기게 제기 했던 내용 그대로이다. 물론 그는 이런 비판을 염두에 두고, 과거의 판단과 무지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 이 문제에 국한해 말하자면 나는 정동영 최고의원의 진정성을 믿는다. 정치인들은 일반인들과 달리, 많은 이슈와 문제들에 끊임 없이 의견을 제출할 것을 요구받으며 모두 정답을 제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또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상황과 맥락에서 다시 이슈를 불러내고 지금의 잣대로 평가, 판단하는 것 역시 무리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동영 최고위원의 경우 변화의 폭과 양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한 국가의 대선후보로까지 나섰던 정치리더가 불과 몇 년만에 완전히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사실상 과거 자신의 입장을 전면적으로 부정, 철회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가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정반대의 입장으로 선회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할 수 있냐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누구나 실수와 오판을 한다. 특히 일상적으로 중요한 결정에 항상적으로 노출되는 주요 정치인일수록 더욱 그럴 가능성이 크다. 현대산업사회 그리고 기술분명은 빠르게 변화한다. 이런 조건과 상황에서 정치인의 이해와 입장이 전혀 변하지 않는 것도 아마 이상한 것이다. 결국 정도의 문제인 것이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 완전히 틀려서는 곤란하다. 정반대의 주장을 수십년도 아닌 불과 수년에 걸쳐 오락가락하는 리더를 어떻게 시민들이 의지하고 따르겠는가?

그러나 나의 이런 평가는 어디까지나 확률적 성격을 갖는다. 즉 그동안의 그의 행보로 볼 때, 그의 이번 변화도 크게 신뢰하기 어렵지 않을까는 것이다. 즉 아닐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어 제시할 두 번째 이유는 그렇지 않다라 말한다. 그것은 그가 사용하는 정치문법의 문제이다. 이번 그의 성명은 표방하는 내용은 과거의 것과 정반대이지만, 문법은 그가 '무지의 시기'로 고백하는 기간의 그것들과 완전히 동일하다. 이번 글에서 그는 또 다시 진보와 퇴보의 길로 다루는 이슈를 이분화한다. 여기에 더해, 자기와 동일한 편에 서지 않은 이들에 대해 퇴보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의 정치 이력의 중심을 차지했던 '정당개혁' 과정에서도 그는 늘 이랬다. 항상 하나의 개혁안(제도변화)을 들고 나왔고, 그 찬반여부를 기준으로 "개혁 대 반개혁"으로 갈라쳤다. 반개혁 세력에게 어김없이 수구, 구태의 딱지를 붙였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허망할정도로의 대실패가 말해주듯이, 그의 이런 이분법은 거의 모두 허구였다. 정치현상은 절대적으로 옳고 절대적으로 그른,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잘 구분되지 안는다. 현대 정치에서 중요한 이슈 대부분은 도덕적 성전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이슈가 되는 FTA도 과거 정치개혁도 그렇다. 그것은 대체로 "많고 적음"  또는 "이익과 손해"의 내용을 갖는 이익 정치를 필요로 한다.

이렇게 볼 때, 한편으로 과거의 오판과 책임을 반성하지만, 다시 "진보냐 퇴보냐"라는 선명한 이분법적 도덕정치의 선봉을 자임하는 그가 다시 틀릴 가능성은 매우크다 하겠다. 그것을 뭐라 부른든 바로 이런 종류의 정치가 지난 두 차례의 민주파 정부를 병들게 하고 실패하게 만든 핵심 내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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