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트위터에서 무척이나 맘에 드는 글을 발견했다.
출근하는 길에 우연히 옆 차선 봉고트럭 젊은 운전사가 울면서 운전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손등으로 눈물을 연신 훔치는 모습을... 저도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누가 저 젊음을 적시는지... 가을입니다. 부디 슬픔도 아픔도 없는 계절이기를....10 Oct by @questfire
이 트윗 저자(?) 김명인은 시인이자 교수이다. 아주 오래전 '한국민주주의의 허약한 사회적 기반'을 주제로 한 [아세아연구] 특집에 그가 쓴 총론을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그때 그가 아연지 주간이었었나? (사실 두 기억 모두 확실친 않다).
당시도 다른 글들이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논리적, 분석적이었던데 반해, 그는 시인답게 해당문제를 정서적으로 접근했고, 내게 울림을 준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 전 그의 이름을 트위터에서 발견하고 바로 팔로했는데, 아니다를까 이런 트윗이 올라왔다. 수많은 정치적 악다구니와, 사람들의 삶이 제거된 예쁜 말들의 향연 가운데 드물게 만나는 보물이다.
다음은 나의 트윗이다. 나 역시 정서적 글쓰기에 강한것 같다. 물론 굉장히 주관적인 판단의 결과지만 말이다.
뉴스에서 크레인 사고로 기사와 외벽작업을 하던 인부 2명이 사망했다. 그 인부의 나이는 나와 같은 서른다섯이었다. 동갑내기 인부의 불행한 죽음에, 뭐라 말하기 힘든 슬픔과 또 미안함이 몰아닥쳤다. 슬픔은 그렇다치고 난 왜 이리 미안한걸까?6 Oct 6 via TwitBird BY @sj76park
아참, 나는 분석적이고 논리적 글쓰기에도 강하다. 푸하하. 이것은 절대 내 자랑이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내 머리로 구성된 사실이다.
그런데 왜 논문은 못쓰는 걸까? 아마도 그것은 머리도 재주도 크게 관련 없기 때문이리라. 누구가 소설가 황석영에게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작품을 쓰실 수 있는지를 물었다. 작가는 "자기가 쓰는게 아니라 엉덩이가 쓰는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나의 망할 엉덩이가 문제다. 요즘 헬쓰장을 꾸준히 다녀서 외관상으론 꽤나 괜찮아져도 말이다. 어쩌면 엉덩이도 문제가 아닐런지 모른다.
봉고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젋은 트럭기사, 외벽작업 도중 사망한 동갑내기 인부의 슬픔과 비극을 지나치면서도 절박해하지 않는 나의 마음가짐이 문제다.
Shame on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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