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3일 일요일

[긴글] 아이폰 대 옴니아- 프로토콜 경제로의 이행

<from tistory, 2010.1.3>

- 뉴욕타임즈 데이비드 브룩스의 The Protocol Society란 칼럼을 읽고 쓰다


1. 아이폰 vs. 옴니아 균열의 형성과 정치적, 경제적 연합지난 12월 한국에 정식 발매된 아이폰은 단순히 국내에 소개되지 못했던 외국 공산품이 들어온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듯 보인다. 그것은 가전 혹은 통신 시장에서 기존 주요 메이커의 점유율의 변화를 넘어,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 충격을 주었고, 이에 상응하는 균열(cleavage)을 만들고 있다.

균열은 언론 등을 통해 아이폰 vs. 옴니아2, 혹은 KT/애플 vs. SKT/삼성의 구도로 즐겨 묘사된다. 그러나 이는 단편적이고 피상적이다. 왜냐면 이번 균열은 특정 제품군의 스펙 싸움이나 브랜드간 충성도 경쟁으로 환원될 수 깊이와 크기를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누가 이 갈등에 참여하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누가 아이폰 vs. 옴니아2 라는 균열을 형성, 유지, 발전시키고 있는가?

'옴니아2' 팀의 대표선수는 단연 국내 대기업(제조업과 통신사)이다. 그 연합의 성격은 비교적 간명하다. 그간 누려왔던 독점이익을 가급적 오래 유지하거나, 혹은 일정 정도 후퇴가 불가피하다면 그 수준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그렇게 유지된 그들의 독점이익은 이 연합의 보조 파트너를 구성하는 주류 언론들에 광고비 명목으로 배분된다. 왜 주류 언론들이 때로는 제조업체나 통신업체 보다 이 연합에서 더 가시적인 집단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옴니아 연합은 기본적으로 독점이익 보호라는 경제적 성격을 띄지만,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해 언론, 정치권과 관료집단, 시민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지지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것은 정치적 성격을 띈다.

다른 편의 대표선수는 누구인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애플도 KT도 아니다. 그들 역시 높은 시장점유율과 이윤을, 그리고 가능하다면 독점적 시장위치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이 진영의 대표선수는 영민한 소비자들이다. 아마도 그들 중 일부는 얼리어댑터라 불리울 것이며, 대체로 중산층 이상의 소득과 평균 이상의 학력을 가졌을 것이다. 그래서 국내 뿐 아니라 세계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고, 현재의 상태가 자신들에 강제한 결과(손해)를 인식하게 된 이들이다. 그러나 '보통의' 소비자에서 '행동하는' 소비자로의 그들의 이동은 결코 자연스럽거나 필연적 과정은 아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불만이다. 자신들의 선호는 제대로 반영하지도 않으면서도, 지불해야 할 비용은 터무니 없이 높은 폐쇄적인 한국 통신시장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어떤 시점에서 임계점에 도달했고, 그것이 아이폰을 계기로 폭발했을 것이다. 애플과 KT는 이런 불만에 편승한 기업이며, 이러한 그들의 행동에 옳고 그른 규범적 판단은 무의미 하다. 부수적으로 이들에 더해 아마도 한국 전자, 통신, IT 시장에서 비주류적 위치에 놓여 있는 다양한 소규모 기업들과 개인들이 이런 소비자의 움직임에 공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지지와 동조를 보내고 있다. 따라서 이 연합의 일차적 성격 역시 이익에 기반해 있다. 그러나 다시 이런 이익의 달성을 위해서 한국의 사회경제적 기득질서와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역시 정치적 성격을 갖는다. 아이폰 연합에서 옴니아 연합의 주류 언론이 수행하는 역할을 수많은 블로거들이 수행하고 있다. 
    
요컨대 하나의 전자제품에 불과한 아이폰이 이처럼 큰 사회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파장을 만들어 내는 데는 바로 이것이 경제적, 정치적 기득질서의 유지와 변화라는 중요한 균열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물적 재화 경제와 프로토콜 경제

여기서 어느 편의 주장이 더 옳은지에 대한 규범적 판단도, 혹은 어느 편이 승리할는지에 대한 전망을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거나 성급하다. 다만 최근 읽은 뉴욕타임즈 칼럼에서 데이비드 브룩스가 설명한 protocol society/economy라는 개념을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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