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6일 일요일

[인물소개] 테드 소렌센 - 그저 그런 스피치라이터가 아닌

JFK의 스피치라이터이자 핵심 참모였던 Ted Sorensen에 대한 부고기사

- 그는 JFK의 연설작가(speechwriter)이자 조력자(counselor).
- 스스로 자신의 부고가 speechwiter Sorenson 으로 missspelling 되고 missjudging 될 것이라 말하곤 했지만, 그는 그저그런 연설문 작성자 아님. 정치 전략가이자 JFK가 가장 신뢰하는 조언자(adviser) 였음.
- 리쳐드 닉슨은 소렌센에 대해 보기 드문 재능 즉 "미국인의 심리구조를 관통하는 구절을 발견하는 요령"을 아는 이로 주변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 평가.
- 소렌센이 작성한 1961년 케네디 대통령 취임연설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 좋은 예.
"The torch has bee passed to a new generation of America "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 소렌센은 케네디를 전국적 인물로 부상시켰던 베스트셀러이자, 풀리쳐상 수상작인 1956년 Profiles in Courage에 조사원으로 참여, 사실상 그가 초안을 쓴 것으로 알려짐.

- 소렌센은 케네디 정부 당시 공식직함은 특별보좌역이었지만 당시 기자들에겐 케네디의 "지성적 분신"(intellectual alter ego)이자,  a lobe of Kennedy's Mind로 불려졌음.

- 그는 케네디 정부 수많은 yes-men 들 가운데서, 국제적/국내적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며 요청되었던 no-man

- 대표적인 일화가 쿠바 핵위기 사태 때 외교 서한. 당시 소련의 후르시초프는 카스트로 정권 전복을 시도한 피그만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쿠바에 핵 미사일 배치 함. 상황은 미소 간 전면적 핵전쟁 직전 따라서 인류공멸의 위기로 고조되어 갔음. 당시 미국 정부는 소련의 핵배치에 대한 단호한 대응(쿠바 공습)을 주문하는 매파가 압도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케네디의 주문을 받고 평화적 해법을 담은 소렌센의 후르시초프에 보낸 서한이 일촉즉발의 위기를 종결시킴. 이때 소렌센의 나이가 34.

- 소렌센은 Nebraska 주 Lincorn 시에서 출생. 링컨시는 16대 미국 대통령 링컨의 이름을 딴 도시이자, 주의사당을 중심으로 링컨의 유산이 살아숨쉬는 도시.

- 그는 변호사 아버지와 사회복지사/평화주의자/페미니즘 어미니 사이에 태어나. 아버지는 당시 네브라스카 주 검찰총장으로 공직에 첫발을 딛은 Theodore Roosebelt 의 이름을 따 그의 이름을 지음.

- 23살 그는 네브라스카 주립대 마치고 아무런 인연도 없는 네브라스카로 떠남.

- 그로부터 18개월 후 그는 당시 메사추세츠 신출내기 상원의원이었던 JFK와 운명적 만남.

- 그는 JFK의 첫인상을, 어리고, 잘생긴 외모의, 매력이 넘치며, 부유한 전쟁영웅이자 하바드 졸업생으로 기억합.

- 상원의원 보좌관 시절 그의 첫 임무는 뉴 잉글랜드 지역 경제 부흥책에 관한 리서치. 이후 앞서 말했듯이 Profiles in Courage의 대부분 장의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짐.

- 그로부터 4년후 그는 본격적으로 JFK 대통령 만드는 작업에 뛰어듬.

- JFK와 함께 50개주를 돌아다님. 당시 민주당 중앙정치에서 케네디의 존재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상태 였음. 즉 그는 너무 어렵고, 너무 카톨릭이며,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경험조차 부족한 인물이었음.

- 전국 순회 대통령 유세 캠프를 통해 그는 그리고 JFK는 정치적 목소리를 만들어 갔음. JFK는 점점 더 좋은 연설가로, 소렌센은 그 연설문을 작성하는데 보다 더 적합한 인물로 진화해 갔음.

- JFK는 연단에서 소렌센은 방청석에서 무엇이 먹히고 아닌지를 배워갔음.

- 1963년 JFK 암살 소렌센 큰 충격, 황폐화.

- 이후 로버트 케네디 암살이후 그의 상원의석에 출마한 경험(그러나 실패)도 있고, 카터 정부당시 CIA 디렉터 제안을 받았으나 역시 그의 반전 경력으로 성사되지 못했음.

- 이후 그는 변호사로, 또 케네디 시대를 기록하는 저자로, 또 민주당의 중요한 시니어로 왕성한 활동.

- 특히 오바마와 같은 젊은 정치인 좋아함. 그는 오바마에게서 케네디를 발견하고 일찍히 지지선언하고 적극적 유세활동에 나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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